때는 2006년 7월 22일이었습니다. 월드컵의 열기도 식었고, 월드컵이란 핑계로 느슨해진 개발정신을 다잡고 늦어진 일정을 어떻게든 수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시기였습니다.
개발은 이제 나름대로 탄력을 받아서 각종 게임 리소스들이 뿜어져 나오던 시기였고, 초기에 계획했던 일정대로 는 절대 게임이 나오지 않을 상황임을 알고(...이거 기획자가 보면 화내겠네)심난함을 감출수가 없었지요. 처음으로 아, 드디어 말단 개발자가 아닌 책임자의 위치에 있구나 라는 압박감을 받으며 괴로워 하던 시기였습니다. 월급을 받으며 개발만 할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정신적 암박감에 시달렸으며 프로그램 소스코드는 알아볼 수 없게 변해갔고 도대체 누가 짠건지 모를정도로 엉망인 결과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 허둥대며 만들던 툴이 맵툴인데, 저희 카나페 게임즈에서 개발한 7개의 툴 중 가장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절대 기획자가 쓸 툴이라고 대충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건 아닙니다 :-) )
이런 압박감에 시달리던 전 기분전환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HD화질로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다운받아 감상한 뒤(...지단의 박치기는 정말 흠잡을데 없었습니다) 새벽 산책을 나섰습니다.
사진을 감상하며 잠시동안 월드컵의 여운에 잠겨 봅시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후 전 지단씨를 '간지'단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일내내 구멍이 뚤린듯 쏟아지던 장맛비가 드디어 그쳤지만 여전히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쏟아진 빗물이 서울하늘의 불쾌한 매연을 씻어내서 그런지 꽤나 상쾌한 공기가 절 맞이 했습니다. 그리고 불어난 청계천을 보며 걷던 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머릿속은 쉽게 정리가 되질 않았고 본격적인 장마철을 맞이하여 장마철 대비 용품을 구입하러 홈 플러스에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발냄새 대비 방향제와, 제습용품 등. 저의 고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적인 물품을 구입했다는 게 더욱 더 절 우울하게 했습니다)
다시 청계천 산책로를 지나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한 작은 친구가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달팽이. 그는 느린 움직임으로 청계천을 향해 꾸준히 전진했습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요? 청계천일까요. 아니 그의 꿈은 더 클지도 모르죠.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다시 바다로 가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 친구는 쉬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망설임없이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그리고 전 깨달았죠. 아아, 제자리에 서서 고민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구나, 종착지가 어디가 됐던 일단은 앞으로 나아가자 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콰직 하고
밟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
..
.
...그리고 저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인생 별거 없구나.
그제서야 어깨의 짐을 내려 놓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달팽이를 보며 바다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느니 했던 건 결국 답을 찾고 싶은 제 자신이 만들어낸 허깨비였죠. '아 오늘 달팽이를 만났
는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 라고 자기 위안을 삼고 싶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드디어 열심히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모험의 끝을 촬영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달팽이의 넋을 기리는 의미에서 시신 사진은 공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P.S 달팽이군의 시신은 조심스레 수습하여 청계천에 떠내려 보내주었습니다. 잘가라 친구야.
질문 - 이 글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개그일까요. 낄낄